
예수님의 이상한 처방전: 중풍병자와 네친구(마가복음 2:1-12)
우리가 수학 시간에 1+1=2라는 걸 배우죠? 그런데 1+1=1이 되기도 해요! 마트에 가면 이걸 볼 수 있죠? 하나를 사면 하나를 그냥 준다는 의미죠!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서도 이 '플러스' 개념이 나와요.
1. 다른 사람의 믿음 때문에 일어난 놀라운 일
친구들의 믿음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아주 놀라운 일을 경험한 적이 나와요.
마가복음 2장 5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어요.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누구를 말하는 걸까요? 바로 네 명의 친구를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어떻게 보면 4+1 같아요.
예수님은 네 명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네 명의 친구를 고쳐주신 게 아니라,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이야기하셨죠. 중풍병은 뇌출혈 같은 이유로 몸이 마비되어서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병, 곧 장애를 갖게 된 병을 말해요.
2. 예수님을 찾아온 친구들
예수님의 고향은 나사렛이었고, 주로 갈릴리 지역(시골이고 천대받던 동네였죠)에서 활동하셨어요. 오늘의 배경인 가버나움도 갈릴리 지역에 있는 곳이에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 싶었고, 말씀을 듣고 싶었고, 병든 것을 고침 받고 싶어 했죠. 그런데 이 중풍병자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죠. 하지만 이 중풍병자에게는 네 명의 친구가 있었어요. 이 친구들은 병든 친구를 보면서 "예수님 오셨대! 우리가 널 도와줄게, 같이 가자" 하고 침상에 그를 눕혀 그대로 메고 예수님께 가기 시작했어요.
3.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한 믿음을 가져야
이 친구들은 자기 친구가 너무 불쌍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가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던 거예요. 우리 친구들 주변에도 아직 예수님을 모르고, 영적으로 병들어서 어떤 길이 참된 길인지도 모르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우리는 그 친구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데려가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해요.
우리가 기억해야 사실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거에요! 내 믿음을 챙겨서 나 혼자만 잘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께 데려가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해요. 왜냐하면 예수님께 가면 우리가 가진 죄 문제들을 모두 해결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가족이나 친척, 할아버지, 할머니, 친구들 중에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을 전하고 데려가고 싶나요?
4. 어려움을 감수하고 지붕을 뜯다
이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침상에 들고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이 꽉 차서 움직일 수도 없었죠. 이때 포기해야 했을까요? 아니요! 이 친구들에게는 "예수님이라면 이 사람을 분명히 고쳐주실 거야!" 하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예수님을 만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지붕으로 올라갔죠. 옛날 이스라엘의 지붕은 흙을 바르고 갈대를 엮어 만든 지붕이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딱딱한 지붕이 아니었어요. 뜯어낼 수 있었죠.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남의 집 지붕을 뜯어내면 흙이나 먼지가 집 안으로 다 쏟아지겠죠. 그리고 나중에 그 지붕을 수리도 해줘야 하잖아요. 이런 어려움이 있지만, 이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감수하고 지붕을 뜯기 시작했어요. 왜? 믿음이 있었으니까. 예수님이 이 사람을 고쳐주시고 낫게 해 주실 거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힘들고 어려워도 모든 것을 감내하고 예수님께 가려고 했던 거예요.
5. 예수님을 전하는 친구가 되자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님을 전하려고 할 때, 다른 사람들이 "교회 다니지 마라," "사람은 진화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하면서 우리에게 반대하거나 눈총을 줄지도 몰라요. 심지어는 "너 혼자 믿지, 왜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이니?" 하고 말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이 구원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요. 만약 우리가 예수님이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어떤 어려움이나 난관이 닥치고 손가락질을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할 수 있어야 해요.
6. 죄 문제부터 해결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어요. 중풍병자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몸이 고침 받는 것(치유)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죄 사함을 먼저 이야기하신 거예요. 그러자 거기에 앉아 있던 서기관들이 속으로 생각했어요.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이건 신성모독이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신성모독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거나 하나님을 조롱하는 뜻이었어요. 그들은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는데, 어떻게 사람이 죄를 용서한다고 하냐며 예수님을 비난한 거예요.
예수님은 서기관들이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곧 아시고 물어보셨어요. "너희가 마음에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한번 생각해 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게 느냐?"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해요?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이 더 쉽다고 했나요? 그렇죠! 왜냐하면 실제로 죄 사함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은 그 사람이 진짜 일어나야 하니까 어렵겠죠!
하지만 사실은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에요.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7.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자신이 죄를 사하는 권세도 있고, 사람의 병을 고쳐주는 것도 다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신 거예요. 예수님은 서기관들이 말한 것처럼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분이 없는데, 그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거예요.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분이죠.
예수님은 단지 우리 병을 고쳐주시는 것뿐만 아니라,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근본적인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어요. 의사들은 약이나 수술로 아픈 것을 고쳐줄 수 있지만, 마음속에 있는 미움, 시기, 질투, 거짓말 같은 죄의 문제는 고쳐줄 수 없어요. 이 죄의 병은 누가 고쳐줄 수 있나요?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어요. 예수님은 우리의 죄 병을 고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대신 갚아주신 거죠.
예수님은 자신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시기 위해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가 곧바로 일어나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아갔어요. 사람들이 다 놀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라고 했죠. 이로써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신 거예요.
8. 서로 도와주는 친구가 되어요
이 친구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는 도저히 예수님께 나올 수 없었던 중풍병자를 데려왔고, 그 결과 그 사람은 죄를 용서받고 병까지 고침 받는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믿음은 나 혼자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나 혼자만 믿고 잘 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죠.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께 올 수 있도록 예수님을 알려주고 데려가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께 쉽게 나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수 있어야 해요. 때로는 힘들고 어렵더라도, 심지어 친구들이 지붕을 뜯을 때 힘들었겠지만, 예수님께 가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감수했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전하는 친구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도와주는 친구가 되어야 해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우리는 서로 형제자매가 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글은 제 2021년 설교를 Notebooklm으로 재편집한 것입니다.
https://notebooklm.google.com/
유튜브 제 채널에 공개한 것 입니다. ^^(구글 AI Notebooklm으로 작업해 봤습니다)
https://youtu.be/ozsXr9d9R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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