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노의 잔, 기도로 받기(누가복음 22장 39-46절)
성구암송: 누가복음 22장 42절
우리 친구들 혹시 부모님이 원하시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이 있어요? 어떤 일이 있나요? 숙제요? 학습지 푸는 거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거요? 책 읽는 거요? 심부름하는 거요? 대부분 공부하는 것들이 하기 싫은 일일 거예요. 그렇죠? 하지만 친구들, 우리가 하기 싫은 일이라고 해도 그게 죽을 만큼 싫은 일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엄마 아빠는 우리를 사랑해서 키워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시고, 빨래도 해 주시는데 그 정도는 해야죠. 맞죠?
그런데 죽을 만큼 정말 정말 하기 싫은 일인데도, 아버지의 뜻이라면 하길 원했던 분이 계세요. 그분이 누굴까요? 바로 예수님이세요.
예수님의 기도: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지만 사실은 하기 싫어했던 일이 있었어요. 그것을 성경에서는 ‘잔(杯)’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누가복음 22장 42절 말씀을 한번 같이 읽어볼게요: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누가복음 22장 42절)
예수님께서는 왜 이 잔을 옮겨 달라고 기도하셨을까요? 잔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잔은 보통 마시는 컵을 말하지만, 구약성경에서 ‘잔’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화가 나셔서 진노하시는 것, 즉 벌을 쏟아 부으시는 것을 표현할 때 많이 사용했어요. 이것을 분노의 잔, 진노의 잔이라고 표현해요. 잔에 물이 쏟아지면 다시 주어 담을 수 있어요, 없어요? 없죠. 쏟아지면 그걸로 끝이에요. 그처럼 하나님께서 분노하셔서 화를 내시면 그 누구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왜 진노의 잔을 쏟으시려고 하실까요? 바로 우리가 지은 죄 때문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바로 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을 계속해서 보내시면서 “너희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경고하셨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끝까지 “싫어요, 내 맘대로 살 거예요”라고 말했어요. 결국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게 되는 거예요. 원래 이 진노의 잔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에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지 않도록 그 잔을 대신 마시겠다고 하신 거예요.
이게 쉬웠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받아야 할 벌을 예수님께서 다 받으셔야 하니,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 잔이 내게서 옮겨 가게 해 주세요"라고 하셨던 거예요.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기도의 마지막에 뭐라고 하셨나요?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누가복음 22장 42절)
예수님은 자기가 원하는 것, 자기 느낌 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를 항상 생각하며 지내셨던 거예요.
우리 친구들도 때로는 엄마 아빠가 원하는 일(학습지 풀기, 심부름하기)이 싫을 때가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게 뭘까?"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선택하는 친구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가 친구들에게 그런 일들을 하라고 하는 건, 친구들을 더 멋지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서예요.
1. 죄의 시작: 내가 하나님이 되려 하는 마음
우리 친구들, 이 세상을 보니까 세상이 정상적으로 잘 진행되는 것 같아요, 아닌 것 같아요? 엉망진창인 것 같죠? 내 모습은 내가 원하는 만큼 잘 살고 있고 멋진 모습인 것 같아요, 아닌 것 같아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게 원래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아닌 것 같아', '이 세상 원래 이런 게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원래 우리에게 가지고 계셨던 계획과 뜻이 있는데, 그게 채워지지 않으니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 이상함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바로 에덴 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세상이었죠. 하나님이 '이건 아니야' 하면 '네, 하나님이 정한 기준에 따라 아니에요', '이건 옳아' 하면 '네, 그게 좋은 거예요' 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누가 들어왔죠? 뱀 안에 들어있던 사탄 마귀가 들어왔어요. 사탄 마귀가 아담과 하와에게 뭐라고 말했나요? "너네 언제까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만 살 거야? 이제 네가 하나님이 되어서 어떤 게 나쁜 건지, 어떤 게 좋은 건지 네가 선택하는 거야. 이거 먹으면 하나님과 똑같이 될 거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방법을 따르고 말았어요. 하나님이 주인이신 세상인데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인공이기보다 내 마음대로, 내가 좋아하는 대로 결정할 거야라고 해 버린 거죠. 이게 바로 '죄(罪)'예요.
"그게 무슨 죄에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잖아요!"라고 항변하고 싶을 거에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일들이 있어요. 조금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도둑질을 좋아하는 사람, 거짓말을 좋아하는 사람, 폭력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각 사람이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이 어떨 것 같아요? 망하죠. 물론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말할 순 없지만! 통상적으로 서로가 "이정도는 지켜야지!", "그래야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고 공동체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니까 이선은 넘지 맙시다!"라고 서로 합의를 했어요! 그래서 세상은 법을 만들어 놨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법이 완전할 수 있을까요? 없어요. 완전함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어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려고 했죠. 그래서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법, 때론 양심의 법을 어기고 우리 마음대로 사는 죄를 지었고 그 죄는 반드시 형벌이 따르게 되었죠! 그 형벌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영원히 멀어져 벌받는 곳에 가야 해요!
2. 구원자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르세요
결국 정의로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는 벌하셔야 하지만 또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용서하고 싶어하세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구를 보내셨나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 가운데 보내셨어요.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고, 제자들을 불러 3년 6개월 동안 가르치셨어요. 그런데도 예수님을 싫어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많았죠.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 중 하나가 예수님을 팔게 될 것이고, 너희들이 오늘 밤 다 배신하고 떠나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어요. 3년 동안 사귀었던 친구가 어느 날 나를 배신한다면 우리 친구들 마음이 어떨 것 같아요? 화가 나고 분노할 거예요.
우리도 살아가면서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겪으면 화가 나고 분노해서, "때려줄 거야!", "문을 쾅 닫고 들어갈 거야", "엄마 아빠에게 대답도 안 할 거야"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때로는 마음에 안 드는 친구를 왕따 시키거나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친구들이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고 싶고, 슬프고,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 때라도 친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요.
구원자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르세요.
예수님도 자기 감정적으로는 제자들이 자기를 배신하고 떠난다면 그들에게 화내고 싶은 마음도 가득했을 거예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은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화를 내거나, 내 감정 가는 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셨어요!
오늘 말씀 3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알 수 있어요.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누가복음 22장 39절) 예수님께서는 매일같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서 습관을 따라 기도를 하셨던 거예요.
3. 죽을 지경의 간절한 기도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게 쉽고 기쁜 일이었을까요? 아니었어요. 마가복음 14장 34절을 보면 예수님의 마음 상태가 어땠는지 잘 나와 있어요.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마가복음 14장 34절) 예수님 마음이 지금 심히 괴로워서 죽을 만큼 힘들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다음 날이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기 때문이죠. 이 죽음은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그 끔찍한 고통이었어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화를 내거나, 모든 것을 없애 버리고 새로 시작하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자기가 원하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따르기 위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셨어요.
예수님께서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셨는지 누가복음 22장 44절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누가복음 22장 44절) 땀이 핏방울처럼 뚝뚝 떨어질 정도로, 온 힘을 다 짜내서 간절하게 기도하고 계셨던 거예요.
세상의 슈퍼 히어로들은 자기 힘과 분노를 자랑하며 악당들을 무찌르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런 능력이 다 있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지셨어요.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원수들을 향해서도 이렇게 기도하셨어요: "하나님, 지금 사람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해요.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이 죄없이 우리를 위해 대신 벌을 받으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완전한 구원자이신 거예요.
결론: 우리를 향한 도전
우리 친구들도 이 사순절 기간에 예수님처럼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 내가 지금 느끼는 그 마음을 하나님께 사실대로 다 말씀드리는 거예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유혹이 들 때, 너무 힘들어서,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고 싶고, 화가 나서 화를 내고 싶을 때, 내 마음에 있는 그 상태를 하나님께 솔직하게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 지금 내 마음이 이래요. 죽을 지경 같아요. 너무 힘들어요". 예수님께서도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으니, 우리 마음을 다 알고 계세요.
두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용기를 달라고 구하는 거예요."하나님,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살고 싶어요. 하나님이 좋게 여기는 것을 나도 좋게 여기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예수님처럼 우리 친구들도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기도를 따라가는 친구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우리를 막고 있는 이 죄의 담이 모두 무너지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다시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내 이웃을 내 몸과같이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어요. 우리 친구들도 하나님과 엄마 아빠처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알겠죠?
이 글은 제 2021년 설교를 Notebooklm으로 재편집한 것입니다.
https://notebooklm.google.com/
유튜브 제 채널에 공개한 것 입니다. ^^(구글 AI Notebooklm으로 작업해 봤습니다)
https://youtu.be/qaygmOuG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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