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는 백성(마가복음 10:46-52)
성구암송: 마가복음 10장 52절: 믿음의 대상
교회의 종탑이 있어요. 제가 예전에 이 교회 종탑에 올라간 적이 있었어요. 크리스마스가 되면 예전에는 교회에다가 전구를 달아 가지고 멋지게 장식을 했었거든요. 종탑이 건물 꼭대기에 있잖아요! 그러니까 올라갈 때 어땠을까? 맞아요, 엄청 무서웠어요. 이게 흔들려서 부러지면 어떻게 하나 두려움이 생기는 거에요! 올라가기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떨어지면 죽을까 봐 무섭기도 하고..., 그러던 어느 날 종탑 공사하는 걸 본 적이 있었어요. 가려져 있으니까 저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르잖아요! 보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는 겁을 안 먹게 됐어. 왜냐하면 종탑안의 구조물을 보니까 트러스라고 해서 견고하게 짜여진 구조물이었어요! 사람 팔뚝만 한 쇠로 트러스를 만들어 절대 넘어지지 않게 짜여져 있었어요. 이걸 보고 나니까 무너질 거라는 생각을 했을까요? 아니죠! 그 다음부터는 겁먹지 않고 올라갈 수 있었어요!. 무너지지 않을것이라는 확신이 생겨서 올라갈 수 있었어요.
내가 분명히 확실하게 알고 거기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행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해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내 자신을 맡겨 버리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것은 미신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내가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맡겨 버린 걸 미신이라고 하고, 분명히 대상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서, 나 자신을 맡기는 것을 믿음이라고 이야기해요. 그래서 믿음은 내가 갖게 아니라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거에요! 상대에 대한 믿음이 내 안에 들어와요. 믿음도 내것이 아니라, 대상이 나에게 준 거예요. 그 대상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면 믿게 되어지거든요.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믿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지 이야기해 주고 있어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마가복음 10장 52절)
그 믿음이 무엇을 가져다준대요? 구원을 가져다준대요. 구원이 뭘까요? 구원이란 것은 건져 낸다란 뜻이에요. 내가 물에 빠졌을 때, 119 구급대 아저씨나 해상 구조대가 와서 구해 주겠죠. 내가 불에 갖혔을 때, 소방관 아저씨가 와서 구해 주겠죠. 도둑 들었을 때, 경찰 아저씨가 와서 구해 주는 것처럼요, 우리가 죄에 빠져있을 때, 우리가 잘못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의 잘못된 죄와 삶에서 우리를 구해 주실 분은 누굴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은 우리가 잘못된 죽음의 방향으로 살아가는 죄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가도록 구원해주셨어요!
1. 이름 없는 존재: 맹인 거지 바디매오
"한 푼만 주세요, 한 푼만 주세요." 한 맹인이 밖에 나와 사람들에게 구걸하면서 하면서 지냈어요.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마가복음 10장 46절) 이 사람의 이름이 바디매오였어요. 그런데 바디매오란 이름은 이름이 아니에요! '바 디매오'의 '바'는 '아들'이라는 뜻이거든요. 이 사람은 이름조차 없이 자기 아버지의 이름으로 디매오의 아들 이렇게 불려진 거에요.
그럼 바디매오는 왜 이렇게 살아가야 했을까요? 이 사람은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앞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때 당시에 앞을 보지 못하는 분들은 일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매일같이 밖에 나가서 구걸하며 다름 사람이 베푸는 호의에 의해 살 수밖에 없었어요. 태어나서 한번도 파란 하늘도, 예쁜 꽃도, 사랑하는 엄마 아빠의 얼굴도, 도움을 준 사람의 얼굴도 볼 수가 없었어요! 얼마나 끔찍한가요?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요? 그런데 그보다 심각한 것은 당시의 사람들은 바디매오를 불쌍히 여기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뭔가 잘못했으니까 저렇게 태어난 거겠지, 부모가 큰죄를 지었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우리도 앞을 본다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도 앞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일들이 너무나 많아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일까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자신의 입장만 보이고 남의 처지나 마음은 보지 못해요! 똑 같은 상황을 보면서도 어떤 사람을 불쌍한 마음으로 보지만 어떤 사람은 경멸히 여기며 봐요!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의 상황을 다 보지 못하면서도 다 아는 것 처럼 정죄하고, 무시하고, 경멸하고, 미워해요! 그런데 우리의 마음까지 보시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깨끗하고 옳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말씀하세요!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로마서 3장 10-12절)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죄는 보려 하지 않고 남들의 잘못만 보며 정죄하고 비교해요! 우리는 눈은 뜨고 있으면서도 어떤 것이 옳은 길인지, 천국으로 향하는 길이 어디인지도 찾을 수 없어요! 앞을 보지 못하는 바디매오처럼 자기 앞길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우리에게는 바디매오의 문제보다 더 끔찍한 죄 문제가 있어요!
2. 예수님을 향한 부르짖음
어느 날 바디매오 친구가 찾아와서 이야기해줬을 거에요! "야 바디매오, 예수님이라는 분이 앉은뱅이도 고치고, 피부병도 고치고,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셨대!" 아마도 바디매오는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을 거에요. '내가 예수님을 만나면 볼 수 있겠구나'. 당장 내가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고 싶은데, 예수님을 찾으러 갈 수 있어! 맞아요 바디매오는 앞을 볼수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본적 없기 때문에 찾아갈 수 없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이 여리고 마을에 오신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예수께서 오시는 소리가 들리니까, 바디매오가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소리 질렀어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다윗의 자손이란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에 약속했던 대로, 언젠가 이스라엘 나라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 내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가지고 올 왕, 우리의 구원자로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에요.
3. 군중의 방해
이렇게 말하니까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야! 어딜 시끄럽게 좀 조용히 하고 있어!'. '죄인인 주제에!', '어디서 거지가?', '어휴 지저분해! 조용히 해!" 이렇게 바디매오에게 함부로 말하는 거였어요.
바디매오 마음 어땠을까? 포기해 버렸을까요? 아니요. 바디매오는 더 큰 목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4. 예수님의 초청
그 소리를 누가 들었을까? 맞아요, 예수님이 들었어요. 예수님이 그 목소리를 듣고, "그 사람을 나에게 데려와라". 사람들은 모두 다 지저분하다고, 냄새난다고,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 바디매오를 자기에게 데려오라고 했을까? 맞아요. 예수님은, 이 바디매오가 앞을 보든, 보지 못하든, 거지이건 아니건, 상관하지 않고 그 사람 자체로 대하셨어요! 예수님은 이 바디매오에게 관심이 있었고, 이 바디매오를 사랑하시고, 이 바디매오를 알고 계셨던 거에요. 그 예수님께서 바디매오만 사랑하시고 바디매오만 돌보고 계실까요? 아니요. 여기 우리 친구들 한 사람 한 사람도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시고 관심을 가지고 우리 친구들을 알고 계시죠. 다른 사람은 나의 배경도 모른체 무시하고, 욕하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친구들의 모든 상황을 다 알고 계셔요. 그 예수님이 바디매오를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하셨어요!
5. 진정한 고침: 제자들의 영적 맹인 상태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에게 물어보셨어요. "내가 너에게 무엇 해주기를 원하느냐?" 아니, 예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신데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걸까요?. 그분은 바로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셨어요. 그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분, 바로 이 예수님은, 아무런 잘못도 죄도 없었지만 우리 죄를 용서하시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죄속에 헤매고있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갈 수 있도록, 길을 보도록 영적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오신 분이에요!
6. 제자들의 눈먼 욕심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떤 분인지를 사람들에게 분명히 이야기했어요.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마가복음 10장 32-34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자신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져 능욕당하고 침 뱉으며 채찍질 당하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그러나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세 번째 이야기하셨는데. 제자들은 뭐 하는 줄 알아요? "예수님, 우리가 원하는 거 좀 들어주세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르시게 되면 예수님의 왕좌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 주세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나에게 높은 자리 하나 내려주세요. 여기에 관심 있는 거에요! 예수님이 지금 예루살렘에 뭐 하러 올라가시는데요? 우리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러 가는 길인데도, 제자들은 그 일에는 관심 없고 자기들이 높아지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거에요! 자기들이 높은 자리 차지하겠다는 욕심에 눈이 가려져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바디매오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은 게 있었어요: "너희들 진짜 고쳐야 될 게 뭔 줄 아니?" 잘못된 생각, 잘못된 마음, 남보다 더 높아지려고 하는 마음,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마음, 그거 고쳐야 돼. 자기 욕심에 눈이 가려져 가지고, 친구도 함부로 대하고, 어떤 게 소중한지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것들을 고쳐 주시려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진짜 봐야 할것을 볼 수 있게 오신 분이라는 것을 예수께서 바디매오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7. 믿음의 고침
그 예수님이 지금 바디매오에게 물어 보셨던 거에요! "내가 너에게 무엇 해주길 원하느냐?". 바디매오가 뭐라고 말했을까? "예수님,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마가복음 10장 52절) 예수님은 자신이 믿음을 주는 대상이신데도 바디매오의 믿음을 인정해 주셨어요!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일하시는게 아니라 믿음에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줘요! 그 믿음이 평생 보지 못했던 눈이 떠져 파란 하늘도 보고, 친구들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믿음의 눈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보게 되니,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나니까! 즉시 그 길에서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어요!.
우리 친구들도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자면, 그 예수님께서 우리 친구들의 모든 삶, 내 모든 문제, 교만해진 마음, 욕심꾸러기의 마음, 이 모든 것들을 고쳐 주실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해요. 우리를 죄에서, 우리의 욕심, 차별, 무시, 비교의식에서 구원하셔서 진짜 보아야 할 것을 보게 해주실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해요!
우리 친구들도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분명히 알게 될 때, 내가 보지 못했던 눈을 뜨게 돼서 내가 진짜 살아가는 방식이 뭔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되요! 이제는 친구들을 사랑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하나님의 멋진 사람들로 살아갈 수 있게는 구원받는 삶을 살게 되는 거예요. 바디매오도 눈을 뜨고 나서 그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에요. 우리 친구들도 진짜 믿음의 대상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예수님을 믿으세요!
이 글은 제 2021년 설교를 Notebooklm으로 재편집한 것입니다.
https://notebooklm.google.com/
유튜브 제 채널에 공개한 것 입니다. ^^(구글 AI Notebooklm으로 작업해 봤습니다)
https://youtu.be/TrqUq0TGc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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